아일랜드 어학 연수 LANGUAGE STUDENTS IN IRELAND
넌 항상 내가 모르는 ‘호우스’라는 바닷가에 가서, 내가 모르는 친구들과 즐겁게 지낸 이야기를 나에게 하곤 했다. 더블린에서 항상 독서에 몰두해 있던 나는 너의 그 말소리를 듣고 때론 그자리에 있는 나를 상상하고, 때론 그 바닷가로 갔다 오는 너와 너의 친구들을 상상했다.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영어로 글쓰는 실력과 기법을 익히기 위해 아일랜드에 온 것이었고, 나에게는 놀러다닐 시간이 없다고 생각했다. 더블린 가운데를 흐르는 리피강변도 가끔만 책 너머로 넘겨보았다.
가끔 너는 내가 모르는 그 친구들과 어학원 라운지에서 텔레비전을 보곤 했다. 네가 얘기해준 바로는 너희들이 보는 것들은 주로 인기 영화 DVD들로, 영어로 된 상황을 가득히 그려내고, 설명하고 묘사하는 그런 내용이었다. 너희들 중 한국 친구들은 그 후 한국에 돌아와서 영상 번역을 하기도 했고, 영어를 이용하는 해외 커뮤니케이션, 해외영업의 다른 말인 해외 마케팅을 하기도 했다. 너는 그날 다른 방에서 어려운 교재를 예습하고 있는 나에게 다가와 볼을 내밀었다.
“오빠, 볼에 뽀뽀 한번만 해봐!”
나는 깜짝 놀라 얼른 고개를 숙였다. 나는 뽀뽀도 키스도 해본적이 없는 청년이었다.
“오빠는 놀러다니지도 않아? 더블린이라는 이름도 낯선 데 와서.”
네가 말을 이어갔다.
“놀면서 배우는 것도 영어야! 오빠는 선생님과만 얘기하고, 우리랑은 얘기도 안하고, 무슨 글을 쓰려고 그러는 거야?”
많이 들어본 얘기였다. 그렇지만 네가 말하자 내가 있는 방의 공기는 너의 목소리의 울림으로 가득했다. 나는 변명처럼 말했다.
“난 코리아헤럴드 같은 데에 글을 쓰는 기자가 되고 싶어. 아니면 특파원이 되고 싶어. 나의 머리 속에 있는 뭔가를 사람들에게 선사하고 싶다구.”
너도 모르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아마 더블린에 두 달 전에 와서 그때 내가 막 넘어서려던 인터미디어트 클래스에서 다 같이 모처럼 자기 소개를 할 때 내가 했던 얘기가 이거였다.
“나는 영어로도 우리나라 문화를 멋지게 개성있게 소개하는 저널리스트가 되고 싶습니다.”
나는 대학교 3학년이던 너와 달리, 더블린에 오기 전 이미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졸업한 상태였다. 전공이 전공이어서 출판사에서 일하거나 방송작가가 될 수도, 신춘문예에 도전할 수도 있었으나, 나는 굳이 애호하던, 타임지 동아리에서 열심히 파던 영어를 한국어만큼 잘 하는 과업에 도전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걸 위해 내가 택한 길은 꼭 목표를 이루는 것을 보장하지도 않고, 고생은 확실히 하게 만드는 모호한 길이었다. 어학원에 처박혀 읽고 쓰고 또 읽고 쓰는 것.
나는 창 밖을 내다보았다. 내가 심지 않은 푸른 나무들이 바람에 잎을 살랑이고 있었다.
“오늘만은 나가볼까?”
나는 삐져서 나간 네가 퉁 닫고 간 문을 곁눈으로 보며 천천히 일어섰다.
너와 내가 친해진 계기는 이거였다.
난 어느 날 혼자서 어학원이 문닫는 동시에 거리로 나와 언제나 맥주를 혼자서 한 잔 하러 그 동네 펍에 갔다. 펍 앞에서 나는 어떤 풍경과 마주쳤다.
바로 남방을 허리에 두르고 훌쩍훌쩍 울고 있는 너였다.
“어, 넌 폴리 아냐? 어학원 같은 데서 공부하는 폴리?”
나는 마침 너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같은 인터미디어트 클래스에 며칠간 있었고, 그 남방은 네가 수업 들을 때 자주 입고 오던 남방이었기 때문이다.
“뭐야, 무슨 일이야?”
나는 망설이다 다음 말을 했다. 너는 여전히 손등으로 눈두덩을 쓸어가며 훌쩍이고 있었다.
“왜 울고 있어 여기서?”
너는 손등으로 눈두덩을 한번 더 쓸고, 갑작스러운 햇살처럼 살짝 웃었다.
“나 엄마아빠가 보고 싶어요.”
우린 내가 맥주를 마시러 자주 가는 펍에 갔다.
너의 엄마아빠는 자주 싸우신다고 너는 말했다. 그리고 아일랜드 와 있는 동안에도 엄마아빠가 싸우셨다는 소식을 접했다고 너는 말하며 또 훌쩍였다.
나는 딱히 투명하게 생각나지 않는 여러 말들을 삼키고 너에게 한 말을 했다.
“이 자리에서 맘껏 울어,”
그렇지만 기네스 흑맥주 한 잔을 시키고 돌아와서 내 앞에 앉을 때 너의 눈매는 언제나 그렇듯이 웃고 있었으며, 선했다. 모든 문제를 뒤로 한 양 양순했다.
“오빠, 고마워요. 오빠밖에 없어요.”
너는 이렇게 말하며 어느 새 양손으로 허리를 잡고 통 크게 웃고 있었다.
그게 너였던 것 같다. 내가 알게 된 너.
나는 더블린 중심가에 살지는 않았다.
대다수의 우리 어학원 학생과 같은 동네에 살면서 아일랜드 수도권을 연결하는 다트 전철을 타고 다녔다.
너에게 볼 뽀뽀를 할 뻔했던 일 이후 어느 여름날 아침, 나는 다트 전철을 타고 어학원으로 통하는 역에 내렸다. 그리고 역사를 나왔는데, 예전과 달리 한 술취한 젊은 금발 남자가 벽에 기대어 스러져 축 늘어져 있었다. 나는 그에게 말을 걸려다 주저하고 그만두다 하는 몸짓을 몇번 어설프게 반복했다. 솔직히 외국인들에게, 특히 술취한 외국인에게 어떤 말로 접근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그를 그냥 지나가 리피강 옆 큰길가로 나왔다.
가다가 나는 역사 쪽으로 한번 뒤돌아보았다. 여전히 그 남자는 축 늘어져 있었고, 아일랜드에 휴대전화가 최신형이 있는지 몰라서 가져온 내 손목시계는 학원이 여는 시간인 9시 정각을 가리키고 있었다.
내 몸도 그 남자의 몸이 그리는 대각선 사선처럼 약간 흔들렸다.
우린 같은 성별의 사람이었다. 그 남자는 대학을 졸업했을 것 같지도 않은 앳된 외모를 소유했다. 그래서 나대로 친밀감을 느꼈던 것일까.
교재를 읽고, 책을 읽고 글을 써보고 하던 일상이 그 날은 약간 미끄러졌다.
곧 등교한 너도, 그날따라 조금 여유가 없어 보였다. 너는 평소처럼 웃으며 다른 학생들을 집에 초대해 가질 파티이야기를 했다. 그렇지만 나는 제외였다. 난 정말은 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난 문득 한 생각을 했다. 너에게 다가갔다.
“어 오빠 왜?”
너는 친근감 있게 나를 불렀다.
“호우스… 같이 갈래?”
난 네가 자주 가는 바닷가 마을 이름을 얘기했다.
“응? 오빠가 왠일이야?”
“가자.”
그리고 난 좀 망설이다 말했다.
“둘만 가자.”
너의 얼굴에 동그란 미소가 떠올랐다.
“호우스 가고 싶어진 거야? 좋아 화요일 어때?”
그날은 금요일이었다.
“그래 좋아.”
그때 난 못 기다릴 것 같았지만 이렇게 말하고 책을 읽는 내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자리에 앉아서 이 아이랑 내가 정말 잘 이어질 수 있을까 어쩌면, 이런 생각을 한 것 같다.
너른 직각 부두에 커다란 갈매기가 날아다녔다. 조그만 언덕과 벼랑들로 이루어진 뒷산은 아일랜드가 늘상 그런것처럼 푸르렀다.
우리는 더블린 시내에서 사온 샌드위치를 꺼내 부두가에 앉았다.
나는 샌드위치를 꺼내들어 조심스럽게 한입 베어물었다.
“이곳은 신이 내린 평화스런 고장같아.”
내가 이 말을 꺼내자 너는 웃으며 말했다.
“오빠는 글쓰듯이 말을 한다. 근데 고장이 아니라 동네 같은거 아냐?”
키 큰 아일랜드 아이들 몇몇이 우리 앞을 지나갔다. 저들도 방과후일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오빠, 묻고 싶은 게 있어.”
“뭔데?”
너는 까르르 웃었다.
“오빠 탄생석이 뭐야?”
“탄생석 그런 거 몰라. 여자들이나 신경쓰는 거 아니야?”
“그래? 그럼 생일은 언제야? 나 탄생석 공부했거든.”
“그래? 7월 3일이야.”
왠 물음일까. 머리가 핑글핑글 돌기 시작했다.
“그러면 오빠 탄생석은 루비야.”
네가 진지하게 말하며 턱을 괴었다.
“루비는 마음의 평화를 의미한대.”
마음의 평화. 평화.
호우스에 갔다 집에 돌아가려면 다시 리피강이 보이는 시내를 거쳐야만 했다.
다트역에 가니 아침에 자주 보던 주정뱅이 청년이 레일에 기대어, 두꺼운 갈색 잠바를 상체에 덮고 앉아 잠을 자고 있었다.
교통카드로 역안에 들어가며 그를 다시 흘깃 보았다. 나는 그를 보면서도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아까 머리가 핑글핑글 돌던 것이, 루비의 탄생석에 얽힌 뜻을 알게 되니 살며시 가라앉았고, 내 머리 속 모든 것은 단정히 취침 상태에 들어가길 원하고 있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맛보는 마음. 의 평화. ‘마음의 평화’였다.
아일랜드에 있는 동안 나는 이제, 좋은 글을 쓸 수 있게 될 것 같았다.
영어든 한국어든 좋았다.
내 마음이 이제 보이기 시작했다.
너 덕분에.
나는 리피 강에게 그날의 작별인사를 하고 살며시 다트 전철에 올라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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