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tories in Korean

아이돌이 된 연무동 길고양이

Nowinlove 2022. 6. 18. 20:01

오후 3시였다.

고양이 몇 마리가 연무동 퉁소바위공원에 있는 수풀 아래 퍼질러 앉아 있었다. 한 마리가 몸을 일으켜 길 가 주차장에 주차된 차 사이를 누비고 다니기 시작했다. 한 남자가 공원 옆을 지나가다 차들 뒤로 자신을 슬슬 따라오는 고양이를 보았다. 얼른 보기에 갈색과 베이지색이 섞인 얼룩 고양이였다. 남자는 웃으며 말했다.

이리 와, 이리 와

얼룩 고양이는 차 사이를 기어 나와서 남자를 정면으로 보았다.

남자는 아주 고양이를 안아들었고, 고양이는 낑낑거렸다.

남자가 고양이 얼굴에 몸을 비비며 말했다.

얼룩아! 나랑 얼룩이 하자.”

다른 친구 고양이들이 안 보이는 데서 모여들고 있음을 감지한 고양이는 당황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남자를 뿌리치지는 않았고, 남자의 손에 들린 고양이는 그대로 편의점이 있는 버스정류장까지 남자에게 붙들려서 남자와 같이 갔다.

 

이것이 우리들의 시작, 시작.

 

202331

 

얘들아.

잘 지내니?

내가 그 사람하고 같이 가서 당황했지?

안전한 사람이야.”

내가 너희들에게 야옹 말했잖아.

내 생각이 맞았어.

 

그 사람, 이상한 사람 아니었어.

너희들 아이돌 그룹이라고 어린 사람들이 좋아하는 애들 알지?

그 사람이 아이돌 그룹을 만드는 사람인데,

우연히 나를 본거야.

 

그 사람이 나를 아이돌로 만들어 준대!

고양이라도 괜찮은가봐!

고양이가 그룹의 심장이 되게 하겠대!

 

믿을 수 없어..

아웅 아잉 야옹 냐옹

 

이 편지는 그 사람이 공원에 갖다 주면 너희들이 읽을 거라 그랬어.

 

202332

 

연습실에 갔는데, 키 크고 예쁜 여자 사람들이 두 명이나 있었어!

하나는 이름이 말그대로 하나다른 하나는 이름이 꿀잼이래.

하나와 꿀잼 사이 가운데가 내 자리야.

나를 위해 이 노래도 금방 만들었대. 나한테 가사 적힌 종이를 줬어. 여기 그 중 약간을 써 볼게. (알아 우리 한국 고양이들은 영어에 약한 거. 그래도 참고 읽어 봐.)

 

언젠가부터 Since When~

공원가 주차도로를 쏘다니던 나는 slowly~

어느날 pick me up!

 

눈물 나게 좋지? 제목은 픽 미 업이야.

그리고 그 사람 이름을 알아냈어. 그 사람 이름은 산토스. 너희도 기억하겠지만 키 크고 콧수염을 기른 사람이었잖아? 그런 사람들이 많은 지역 말로 어울리는 이름을 지었대.

 

노래 장르가 뭐냐고 산토스에게 물었어.

근데 일렉트로니카라고만 하고 더 말을 안해.

그 정도는 고양이들도 안다고!

 

나는 가운데서 영어 랩을 하고 요염하게 춤을 추면 된대.

요염한 게 뭐지?

 

아무튼 얘들아.

너희들을 4월에 있는 내 첫 공연에 초대하고 싶어.

산토스한테 얘기해서 너희들을 데려오라고 할게.

어때?

 

그리고 어린고양이 천혜야, 내가 그 사람 따라가기 하루 전 다친 다리는 다 나았어? 앞으로는 너무 높은 데서 뛰어내리지 마. 내 말 들어. 고양이라도 중력은 어쩔 수 없어!

 

202335

우리 그룹의 이름이 뭔지 가르쳐줄까?

와일드 캣츠!

하나와 꿀잼이 나와 다른 방에 한참 있다가 나와서 나한테 결정을 통보하더라.

캣츠라는 고양이들의 뮤지컬도 있는데 그것도 참고한 거래.

산토스가 캣츠 공연하면 보러 가게 해 준다고 했어. 기대돼.

 

안무가 선생님이 왔어.

내 몸짓을 한참 보더니

고양이 댄스라는 멋진 춤을 뚝딱 만들어 주더라.

뒷발을 들고 일어나 앞발을 살살 움직이며 이쪽 저쪽 애교를 피우면 돼!

 

참고로 우리는 곧 계약을 하게 되는데, 2023년부터 2030년까지야!

내가 사람 시간으로 7년 동안이나 아이돌 그룹 활동을 하게 되면,

내가 그만큼 버틸 수 있을까?

화려한 조명, 고양이 댄스, 좋은 노래, 동료들, ..

 

내가 돈 벌면 나는 연무동 퉁소바위공원에 우리 고양이들을 위한 쉘터를 만들어 줄 거야.

곧 그럴 수 있을 것 같으니 조금만 기다려 얘들아! 아잉 야옹

 

2023310

픽 미 업을 타이틀곡으로 곧 댄스 콘서트를 하게 돼.

너희들을 떠난 뒤로 벌써 열흘인데, 벌써 공연까지 하는 나는 정말 새로운 나 자신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 중요한 것 말할 게 있어.

산토스는 나를 얼룩이라고 불렀지만, 아이돌 그룹에는 좀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이 많아서,

내가 개구쟁이 고양이라고 톰캣으로 하기로 했어.

멤버 이름이 하나, 꿀잼, 톰캣이라니 소리가 통일됐지?

 

우리 연습실은 서울 청담동에 있는 어느 건물의 다락방에 있어.

산토스가 나를 처음 데려다 준 게 바로 여기야.

우리 멤버들은 여길 와일드 캣츠의 모태라고 부르기로 했어. .

연습실 안에는 고양이가 편하게 연습할 수 있게 경사진 부분이나 데크가 없어.

 

, 우리 멤버들을 소개할게.

하나는 키가 무려 170cm이고, 머리는 플래티넘 금발이야. 염색한대.

우리 고양이도 그런 색깔로 염색을 한 고양이가 있을까? 궁금해. 나 특별 대우에 맛들인 걸까?

그리고 꿀잼은 머리색이 완전 꿀색. 머리를 다 탈색하고 다시 염색한 거래.

키는 165cm이래 아이돌로는 어중간 하지?

우리 고양이에 비하면 다 큰 거지.

나는 머리에서 꼬리까지 키 55cm이고 알겠지만 털은 얼룩덜룩해.

하지만 내가 가운데서 노래할 때 우리 멤버들은 고양이 댄스로 나를 받쳐줘.

야옹!

 

2023320

다들 잘 지내고 있지?

퉁소바위공원의 비탈에 미끄러지지들 말고.

이제 우리 고양이들도 기지개를 켜는 봄이 온다.

나는 25일로 첫 콘서트가 예정되어서 열심히 막바지 연습 중이야.

주로 영어 랩 부분을 나 톰캣이 부르게 되지.

 

고양이 댄스는 완전 히트하고 있어!

산토스도 날 따라 하고, 하나와 꿀잼은 동작을 변형시켜 더 사람스러운 춤을 추고 있어!

노래가 시작되면 뒤에 있던 나는 용감히 앞으로 나아가며 고양이 댄스에 맞춰 랩을 하지.

 

지금까지는 모든 게 잘되고 있는 것 같아.

계약을 했어. 너희들에게 말했듯이 7년간.

계약이 끝나고 나면 나는 늙은 고양이가 되어 있겠지? 잉잉.

참고로 캣츠 뮤지컬 버전을 티빙으로 봤는데, 거기 메모리즈라는 노래를 부르는 그리자벨라 고양이가 꼭 7년 후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어엉.

 

연습실에서 나오다 보면 청담동의 두서너층 건물들을 앞에 두고

꼭 햇님이 나를 비춰주는 것 같아 아웅~거리게 돼.

하나와 꿀잼과 나는 같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어!

아파트는 CCTV로 방범이 잘 되어 있는 동네야.

집에 들어가면 방음이 잘 되어 있는 작은 방이 있어서 우리는 그 방에 있는 거울에 우리 자신을 비추고 오늘 연습한 춤과 노래를 맞추어 보고 있지.

밥과 청소는 파출부 분이 해주고 계시고 우리는 가끔 세탁 하는 정도야.

연무동 길고양이 출세했네!

 

2023324

얘들아, 이 편지를 너희들에 산토스의 손에서 받으면 그 땐 이미 와일드 캣츠의 콘서트는 끝나 있겠지만, 그래도 오늘의 흥분된 느낌을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어서 펜을 들었어.

우선 이 얘기부터.. 나 요즘 취미가 있는데, 만화 그리기야. 그것도 고양이 그리기!

만화나 웹툰을 보면 고양이들이 가끔 나오잖아? 우리 다 알지?

그런데 과하게 동물스럽거나, 무슨 로봇같이 나오는 부분도 꽤 많아 그치?

나는 털하고 무늬 포함해서 곡선을 잘 그려서 부드러운 이미지가 나오게 그릴려고 해.

벌써 몇 번이나 앞발에 연필을 들고 비례를 잡아 시작하지.

나중에 잘 그리게 되면 우리 앨범 자켓에 넣어주겠다고 산토스가 약속했어.

 

그리고 이 얘기. 저번에 우리 아파트에서 주차장으로 가는데 까만 줄무늬 고양이가 갑자기 나타나더라고. 나는 따뜻한 코트를 입고 모자를 쓰고 차를 타러 가는데 이 길고양이는 옷은커녕 발톱조차 깎지 않은 녀석이더라. 왠지 미안해져서 꺄릉- 꺄릉 거리며 말을 걸었는데 외면하더군. 나 혼자 얘의 이름을 지어 줬어. 남자인 것 같아 리치라고 지어주었어. 부자 남자 고양이가 되어라- 하고.

 

왜 이 얘기 안하나 했지?

내일은 드디어 와일드 캣츠 공연 날이야!

우리 작년에 마스크는 뗐잖니.

그래서 공연은 괜찮지만,

밖에 나다니다 보면, 아직 마스크 한 사람들이 몇몇 보여.

나는 고양이지만 인간들과 함께 일을 하게 되면서

진작에 부스터샷까지 맞았지~

그래서 마스크 한 사람들이 더 아려.

내일 정말 멋진 세트리스트로 우리를 보러 오는 누구라도 만족하는 공연이 될꺼야.

아참, 나는 유튜브나 네이버 같은 사이트에 올라오는 나쁜 댓글은 볼 생각이 없어.

내가 아이돌이 된 고양이인 것만도 충분히 나에게는 새로운 일이거든. 그걸로 충분해.

 

2023325

우선 오늘 둥근얼굴고양이 써클렌즈 생일인 거 다 기억하고 있다. 렌즈야, 몇 년 전에 태어나면서 엄마를 여의었지만, 우리 퉁소바위공원 고양이들이 다 너 키워준 거 알지? 렌즈는 이제는 깔끔하니 새하얀 털을 자랑하지만, 그때는 분홍색으로 털도 제대로 나지 않은 애기였잖니? 오늘은 렌즈 어엿히 어른되는 날이다! 사람들이 스무 살 되면 하는 성인식 생각나지? 렌즈 어른이다 이제 더욱 힘내!

다음, 콘서트 소식.

서울에 있는, 우리 고양이들도 다들 아는 대학로에서 미니콘서트로 열었어.

극장 로비에는 예쁜 봄 장식이 되어 있었어.

그리고 일곱시 콘서트 시작, 달콤한 꿀잼의 보컬에 하나의 춤, 그리고 나 톰캣의 춤과 랩이 어우러져 관객들은 환성!

앵콜까지 두 번이나 하고 난리도 아니었어.

나에게 주어진 남을 기쁘게 할 기회를 충족시킬 수 있어서 좋았어.

길고양이로 하루하루 살아갈 때는 그런 게 있는지조차 몰랐는데.

너희들을 콘서트에 초대해야 했어.

산토스한테 꼭 알아봐야겠다.

 

2023331

접때 편지에 쓴 고양이 리치 기억하지? 리치와 얘기 했어! 오늘 아침, 가벼운 봄옷으로 갈아입고 장갑도 벗어버린 모습으로 주차된 우리 차로 우리 셋이 가고 있는데, 리치가 또 나타나서 냐옹냐옹거리는 거야. 뭘 원하는 걸까 궁금해 하며 지나가는데, 이건 분명 나에게 하는 게 틀림없는 말을 하더라구. 뭐라 했냐면, “난 럼 텀 터거야!” 럼 텀 터거가 누군지 너희들은 아직 모를꺼야. 얼마 전에 추천으로 읽은 뮤지컬 캣츠 대본에 나오는 바람둥이 고양이야. 리치는 도시 고양이라 그런가 별걸 다 아네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내가 여자고양이잖니. 암코양이. 럼 텀 터거와 리치는 수코양이고. 분명 나한테 대시하는 거야. 대시가 뭐냐고? 지나가는 인간들한테 물어봐.

좀 있으면 여의도는 벚꽃축제가 열릴 거야. 우리 연무 공원 길고양이들도 봄에 공원의 언덕에 심긴 벚나무들 가까이 가서 향기 맡고 그런 거 해봤잖아 다들 알지? 여의도는 우리가 방송 때문에 앞으로 자주 가게 될 곳이래.

나는 하나와 꿀잼과 벚꽃 거리에 가서 아웅 하고 동영상 찍고 할 거야. 그애들과 점점 친해지고 있어. 얼마 안 있으면 내 눈엔 하나와 꿀잼이 고양이로 보일지도 몰라.

오늘 아침만 해도 꿀잼이 나한테 이렇게 말했거든?

톰캣아 너 눈에 뭐가 낀 것 같아.”

이러면서 내 눈알을 막 만지려는 거야. 나는 쫄았지만 ?” 하면서 내 몸을 꿀잼한테 맡겼어. 알고 보니 꿀잼이 내 눈알에서 먼지가 된 눈꼽을 빼내 준 거야. 얘들아, 나는 산토스 이후 연무동 길고양이 시절 이후로 사람에게 내 몸을 맡긴 게 후회가 없어. 내가 운이 좋은 걸까?

열일곱살인 하나는 연습생이 되고 나서 엄마 아빠랑 못 만나서 슬프다며 세상에 엄마가 불러 주신 자장가를 기억해 불러 주더라. 꿀잼과 나는 슬픈 하나의 상담사야. 근데 하나는 정말 티없는 것 같아. 연습생 하기 바로 전까지 밤마다 안방 침대에서 엄마 아빠 사이에 누워서 잤대! 갓난쟁이 아기도 아니고, 고양이도 아니고, 개도 아니고. 흐응야!

 

202348

드디어 벚꽃 사진 찍었다! 보이지? 폴라로이드로 우릴 찍은 사진 두 장을 동봉해 보내달라고 산토스한테 부탁했어. 그런데 하나와 꿀잼과 나 톰캣이 같이 걸어가는 사진을 찍으려면 너무 멀리서 구도를 잡아야 해서, 내가 하나 품에 안기기로 했어. 사진사 분이 픽 미 업 안무 동작을 해 보여 달라고 해서 내가 갸르릉- 참으라고 사진사 분한테 말했어. 화났을까? 하나의 상체는 아주 부드러운 빵 같이 느껴졌어. 내가 하나를 좋아하는 걸까?

퉁소바위공원에서는 개나리가 슬슬 지고 있겠지? 우리 고양이들 다 같이 몰려가서 보구 싶다. 콘서트 초대하면 올 거지? 꼭이야-

 

2023411

우리가 오늘 픽 미 업으로 뮤즈뱅카에 나왔어! 공중파 방송!

피디님이 전에 동영상으로 봤다면서 막상 우리 셋을 보니까 패닉상태가 되는 것 같더라구. 멘붕이라고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그러는 거 있잖아. 그래도 정신차리고 앵글 맞추고 하니까 나중에 보니 재밌는 화면이 나와서 기뻤어. 고양이가 녹음실 들어오는 거 처음이라며 막-

썬탠은 잘 지내? 썬탠아, 나 산토스 만나기 직전에 애기 낳았잖어 너.. 네 마리.. 애기들 이름이 기억 안 난다. 너 첫번째 임신이어서 우리가 다들 축하해 주고 공원에 두꺼운 종이상자와 맛있는 거 물어다 주고 그랬잖아! 애기들 많이 자랐겠다.

밤이 되었으니 너희들에게는 내일이나 모레 이 편지 전해 줄 수 있겠지? 오랜만에 노을을 봤어. 퉁소바위공원 풀밭에 꿍꿍 앉아 있을 때 노을이 살며시 내려오는 거 자주 봤잖아, 우리.

아참 뮤즈뱅카 끝나고 저녁에 돌아오는 길에 또 리치를 봤어. , 얘가 내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있는 거 아닐까 생각하다가 웃어 넘겼는데, 세상에 얘가 나한테 윙크를 하는 거야. 잘못 본 게 아닌가 싶어서 외면했다가 다시 봤더니 얘가 또 윙크를 하는 거야. 얘 어디 잘못됬대니? 내가 얼굴을 찡그리자 차들 사이로 부리나케 사라지더라. 부자 고양이 리치~

 

2023416

재미있는 일이 있었어.

나도 몰랐고, 너희들도 몰랐을 텐데, <사랑은 희망을 타고>라는 공중파 방송 프로그램이 있는데, 유명인사가 제일 보고 싶은 존재를 찝어서 그 존재를 찾아가는 거야. 이 프로그램에 우리 와일드 캣츠가 나오게 된 거야. 근데 하나는 고사했고, 꿀잼도 딱히 보고 싶은 존재가 없다고 해서 나 톰캣이 주인공이 됐어. 갑자기 나타난 산토스가 이렇게 말했어.

연무동 퉁소바위공원에서 같이 놀던 고양이들 초대하지 않을래?”

그런데 그때 나는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었어.

리치를 초대하면 어떨까?’

고양이들 아님 리치?

산토스, 우리 아파트에 길냥이가 있어요.”

산토스는 놀라는 것 같았어. 내가 다시 말했어.

까만 줄무늬 고양이가 있어요. 내가 이름 지었어요. ‘리치라고 부자 되라고. 주차장에서 종종 보곤 해요.”

산토스는 그럼 리치를 찾아내서 섭외해 보겠다며 사라졌어.

, 얘들아.

삐지지 마라.

리치의 호감가는 윙크 하나에 내 운명이 바뀔 수도 있으니.

나 진심이야!

 

2023420

얘들아! 좋은 소식이 있어. 내 운명의 여신이 나에게 미소짓고 있는 거야.

수원 화성에서 와일드 캣츠 첫 야외 콘서트! 429일이야. 연무동에서 창룡문 지나가면 있는 푸른 언덕에서 하게 될 것 같아!

이러다가 가을에 그랜드민트페스티벌도 갈 수 있을까? 장르가 다르다 해도 우리 음악도 좋으니까. 그래도 난 사실 그랜드민트페스티벌에 나오는 것 같은 음악을 좋아하는걸. 인간적이야. 우리 고양이들도 사실 인간들처럼 여럿으로 나눠지지 않니? 대중음악과 클래식부터 말이야. 대중음악만 해도 인디와 팝, 록으로 나누어지고 좋아하는 뮤지션도 다 다르고.

우리 그랜드민트페스티벌 나오게 되면 너희들을 꼭 초대할께. 그랜드민트페스티벌 오게 되면 다른 뮤지션 공연도 각자 찾아가서 봐.

 

2023430

<사랑은 희망을 싣고> 드디어 방송했어.

프로그램의 반이 우리 아파트 단지에 사는 검은 줄무늬 길고양이를 찾는 데 쓰여서 좀 미안했어. 하지만 결국 리치를 찾아내고, 스튜디오로 돌아와서 어리벙벙해진 리치가 TV 등장해 주고, 나를 보고 반가워하고. 리치에게는 놀라운 일이었을 거야. 내가 럼 텀 터거얘기를 하며 즐거워하자 리치가 많이 쑥스러워 하더라구. 하여간 잘 됐어. 그리고 프로그램 취재진 중 한 명이 나중에 나를 조용히 불러서, 리치가 다른 아파트 지층 화단에 난 구멍에 살고 있더라며 한번 가보라고 하더라. 그럴 시간이 있을까? 하지만 꼭 가 보고 싶어서 산토스한테 부탁했어.

나중에 너희들을 만나게 되면 리치와 꼭 만나게 해 줄게. 방송 하면서 리치와 열심히 얘기를 하다 보니, 과연 나와 취향과 맘이 통하는 점이 많더라구. 나 천리안-

 

2023515

픽 미 업과 더불어 또 하나의 타이틀곡 역할을 하게 될 음원을 녹음하기로 했어.

픽 미 업은 반려동물 이야기였잖아? 이번에는 반려동물을 데려오는 반려인간들 얘기야. 제목은 아직 안 정해졌어.

산토스가 작사에 많이 참여했어. 가사 한 부분 쓸게.

 

언제인가 내가

거울처럼 너를

우리 서로 삶을 나누는

그런 사이가 되었으면

 

오늘은 인간의 스승의 날이야. 나는 누가 나의 스승일까 생각하다가 문득 고양이 댄스를 만들어 준 안무가 선생님이 진짜 나의 잠재력을 끌어내 준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물론 우리 고양이들 중 선배 연무동 길고양이 냥님들에게도 살아가는 방법을 많이 배웠고, 넘넘 감사하지만, 무대 위 나에게, 우리들에게 초점을 맞춘 나의 하이라이트는 고양이 댄스 안무가 님으로 정할래!

 

202361

그 동안 많은 일이 있었지? 두번째 타이틀곡 이름은 벌써 전해졌고 (‘집사의 노래어때?)

그러다가 편지를 써야겠다 생각이 들게 된 이유가 있었지.

리치와 부쩍 많이 마주치고 얘기도 많이 하게 됐는데, 오늘 저녁에 밴을 주차장에 주차하고 아파트 현관으로 올라가려고 했는데 현관 앞 계단에 리치가 떡하니 앉아 있는 거야.

어머 왠일이야.” 내가 갸르릉거렸어.

그때 리치가 일어나서 살며시 볼을 내 볼에 갖다 비비는 거야. 이 정도면 볼키스 아니니? 아잉. 난 당연 도망왔지~

우리 연무동 고양이들도 암코양이와 숫코양이가 골고루 충원이 되어서 퉁소바위공원이 사랑의 공원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202364

우리가 다행히 히트가 되어서 (연속 빌보드 차트 100 진입 비록 98위지만) 스케줄이 매우 많아졌어. 해외에서는 고양이 아이돌이라는 이름을 붙여주며 우리를 보고 싶어해. 너희도 미국의 엘렌 쇼알지? 엘렌이 우리 좋아한대애. 대애박.

그래서 하여튼 어제 아침 스케줄이 있어서 새벽 일찍 집을 나섰는데, 어느새 리치가 이번에는 우리 밴 앞에 와서 갸르랑거리고 있는 거야.

너 혹시 배고프니?”

리치는 보통 쓰레기장을 뒤적여서 배를 채우곤 하는데, 그게 안되어 보여서 내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리치가 나를 빤히 보더니 고개를 휘젓더라구. 리치가 말했어.

, 내 집사해라.”

, 고양이가 집사를 하라고? 그건 또 하나의 극단이잖아. 나는 콧대를 세우며 밴에 얼른 탔어. 하지만 리치 말의 여운이 길게 남은 것은 사실이야. 그래서 이 편지를 쓰고 있는 거지. 내가 무엇을 하길 원하는 건 사실이겠고. 그게 뭘까 왠지 물어보지를 못하겠어. 내 맘을 두근대게 하는 오직 한 고양이. 그리고 존재.

새벽을 가르고 우리 밴은 방송국으로 달렸고, 내 양쪽 옆에 하나와 꿀잼은 농담 릴레이를 하며 나의 선잠을 방해하고 있었어. 나는 큼큼 기침하면서 랩할 목소리를 다듬고, 무대에서 춤을 출 손, , 몸을 손으로 가볍게 맛사지했어.

다행히 어제 저녁에 리치는 다시 주차장에 나타났어. 나에게 실망했을까? 하지만 그런 것 같지는 않았어. 어슬렁어슬렁 나타난 리치는 나에게 바보.”라는 말을 남기고 어디론가 사라졌어.

 

2023620

벌써 우리가 헤어진지도 넉 달이 다되어 가네. 다들 잘 자고 먹고 애도 낳고 있니? 그러고 보니 1월달에 자기 의사에 관계없이 입양되어 간 다이아는 잘 살고 있을까? 다이아는 계단 난간을 타고 스르륵 내려오는 재주가 있잖아. 우리 알잖아. 혹시라도 다이아가 집안 계단을 헛디뎌서 바닥에 머리 찧는 거 아닌지 몰라. 걱정.

요즘 하나와 꿀잼과 나는 새로 시작한 먹방 리얼리티 쇼 <밥해놨다>를 집에 오면 보고 있어. 종편 방송인데 5월 말부터 방송하고 있더라. 나오는 사람들도 착하고 순하고 밥 메뉴도 그렇게 맵지 않고, 딱 내 취향이야. 나 연무동 길고양이 시절에도 음식물 쓰레기에서 김치는 골라내 가며 먹었잖어. 우리가 예능에 출연한다면 (아직 출연해 본 적 없지만) 이런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싶다고 우리 셋이 얘기했어. 와냥.

 

2023626

우리의 소원이 이루어질려나봐! <밥해놨다>에서 우리 섭외가 들어왔대! 하나와 꿀잼은 부리나케 옷방으로 가서 프로그램에 입고 나갈 수 있는 옷을 골라보고 있어! 녹화는 28.

 

2023629일 점심.

어제 밤새까지 녹화를 하느라 아침에 집에 들어와 쓰러져서 이제 밥먹으려고 일어났어. 출연진은 우리 와일드 캣츠보다 모두 방송 고참들이었고, 밤이고 산속인데도 꿀잼과 하나가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춥지 않고 포근했어. 보이그룹도 하나 나왔는데 이들도 방송 경험이 우리보다 훨씬 많은 선배여서 우리가 깍듯이 인사했지. 밥을 출연진이 짓는 모습을 일일이 녹화하는 것 같아서 신경쓰이더라. 나는 밥을 한 돌솥에 솥뚜껑을 놓고 그 위로 올라가 돌로 누를 필요가 없도록 하는 역할을 했어. 보이그룹 선배들이 솥 위에 올라앉은 나를 막 쓰다듬으려고 해서 하나와 꿀잼이 웃으면서 말렸지. 엉엉.

공원에 TV가 없어서 너희는 <밥해놨다>에서 쉽게 못보겠다. 길밥 먹는 우리 고양이들에게도 좋은 프로그램이야. 볼 기회가 되면 한번 봐.

 

2023710일 밤

얘들아, 내가 이제까지 말하지 않은 거 있지? 우리 아파트 인테리어와, 우리 아파트에서 밤이 어떻게 오고, 아침이 어떻게 오고 하는 거 말야. 우선 인테리어는 멤버 방마다 다른 알록달록 벽지들과 목조 바닥으로 고급스럽고 환하게 꾸미고 (잡지를 보니까 글을 이런 식으로 써서 소개하더라구) 밤이 올 땐 화장실 벽에 서쪽으로 난 창으로 빨간 해가 지는 것이 보여. 그리고 아침에는 동쪽 하나 방 작은 창문으로 하얀 해가 뜨지. 가을이나 겨울 새벽이나 저녁에 우리가 퉁소바위공원에서 따땃하게 있을려고 풀밭에 수풀 아래 퍼질러 앉아 있던 기억 나니? 우리 아파트는 중앙 난방이양. 나 호강하는 걸까?

우리 세번째 곡 이름은 ‘Silver Diamond', 은빛 다이아몬드. 이 노래도 일렉트로 댄스. 이 노래는 빌보드 차트 100 80위 했는데, 우리처럼 미는 곡 중 모든 곡이(세 곡뿐이지만) 빌보드 차트에 등장한 건 흔치 않은 일이래. 그래서 우리가 미국 매체의 초대를 받아 718일자 뉴욕에 갔다 오게 됐대.

장점! 무지 많다. 두근거린다. 단점! .. 리치와 잠깐 헤어지게 됐다.

리치와 나는 저번 편지 때 이후로 안부도 자주 묻고, 화단에 난 리치가 사는 구멍에도 같이 가 보고, 내 고양이 니트옷도 리치한테 빌려줘서 리치가 입어 보고 하며 말도 통하며 친하게 지냈는데, 이렇게 잠깐이라도 헤어지게 되어서 아쉬워. 얘들아, 나 어떻게 하면 좋니? 나에게 좋은 텔레파시 좀 팍팍 쏴줘!

 

2023717

리치와 헤어졌다.

, 이별 아니고. 잠깐 동안의 이별.

누구보다도 리치는 내 맘을 털어놓는 상대야.

캣츠를 읽는 인테리 고양이.

아 눈물나 앙앙.

누가 보면 두 고양이들이 서로 어깨를 만지작거리는 걸로만 보이겠지?

 

202392

미국에서 생각보다 오래 있었어.

얘들아! 모두 다 잘 있는 거지?

하나도 더 이상 엄마아빠랑 헤어져서 울지 않고

꿀잼은 성숙한 열아홉살이 되었고.

나는 섹시댄스로 한국과 미국 방송계에서 유명한 고양이가 되었고.

전부 6개월 동안 많은 것이 바뀌었네.

우리 퉁소바위공원 고양이들도 슬슬 가을 겨울 준비해야겠지?

연무동 다시 가 보고 싶다.

 

202397

오랜만에 만난 산토스가 주선해 주어서 9일날 연무 공원으로 산토스와 함께 놀러가기로 했어.

 

2023910

어제 우리 좋았지?

오랫동안 못 보다가 보는 것이 반가워 연방 비비적대며.

다들 5cm쯤 키가 큰 것 같아. 천혜는 어른 다 되었더구나.

그런데 날 보고 노래하지는 않더라. 갸르릉대기만 하고.

고양이 노래가 얼마나 좋은 건데- 서운-

서울전자음악단의 고양이의 고향 노래란 노래를 천혜에게 들려주고 싶어.

우리 그랜드민트페스티벌에 출연 신청했어. 내가 하도 되풀이 냐앙냐대며 가보고 싶다고 난리쳐서. 페스티벌 시작까지 한달 10일 남았다.

리치는 어제 보았어. 약간 살이 빠졌더라. 이번에 만날 때 초췌한 모습 보이니까 가슴이 아팠어. 나도 6개월 전까지만 해도 뒤져먹던 음식물 쓰레기가 얄미워지고그래.

 

2023105

밤에 웹검색 하며 각종 페르시아고양이 사진을 보고 있는데, 회사에서 전화가 왔어. 그랜드민트페스티벌 1020일 오픈 날에 피처링 하게 됐대! 아이돌의 승리! 아냐 그건 아니고, 그냥 해 본 말이고. 근데 너무 기쁘다! 오프닝이니 여기서 공연하고 나서 부리나케 다른 팀들 노래 들으러 가야겠다.

산토스한테 말해서 우리 공연 단관 일부를 연무 공원 길고양이들에게 내주기로 했어. 꼭 와주기 바래. 우리 노래도 좋고, 다른 팀들도 보나마나 좋을 거고.

 

20231010

D-10이다. 요즘은 어느 때보다도 밤과 새벽이 절실한 때야. 근데 왠지는 나도 몰라.

리치도 단관에 참여하기로 했어. 나는 집에서 우유와 과자를 물고 내려와서 리치랑 나눠먹으며 단관 얘기를 꺼냈지. 너가 꼭 보러왔음 좋겠다-하고.

아마도 우리 빌보드 차트에 올라온 세 곡 말고도, 다른 일렉트로니카 음악도 공연하게 되겠지.

근데 뭔가 허함은 왜일까. 왠지. 나 가을 타는 고양이일까. 너희들 내가 가을 안 타는 고양이였던 거 기억나지. 왜일까.

 

20231020

오늘은 새벽부터 올림픽공원에 도착해서 조명, 무대 세팅하고 리허설하고. 우리가 오프닝이라서 새벽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안되었어.

우리 연무동 길고양이들은 어른은 다섯 마리가 왔더구나. 꼬마 고양이들도 다섯 마리가 왔더구나. 잘 했어 얘들아. 아이들한테 좋은 경험이 될 거야.

그리고 리치도 산토스와 함께 리허설하는 데 와서 줄곧 좌석에 가만히 앉아있더라. 반가웠어 리치야.

2시부터 우리 공연이 시작하는데, 세상에 계속 눈길을 무대에 고정시키고 있는거야 리치가.

산토스가 리치한테 농담을 했지. 리치가 부른 노래가 있다고. 리치가 깜짝 놀라자 산토스가 사랑해 이말밖에라고 가수 리치 있다고 해서 리치는 더 깜짝 놀라며 웃었음. 리치가 역시 격조 있는 길고양이지. 자랑스럽다.

맨 앞줄에 리치를 포함한 우리 고양이들이 주루룩 앉아 있는 채로 오프닝 공연은 시작됐어. 우리 노래들도 인디스럽게 편곡해 일곱곡을 불렀지. 나의 고양이 댄스는 이미 세상에 변이형을 선보인 바 있었고.

랩을 하고 앞에 나와 춤을 추며 나는 관객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어..

왜냐고? 바로 앞에 리치가 앉아서 날 뚫어져라 보고 있는걸. 혀를 낼름거리며.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30분이 지나가고, 하나와 꿀잼과 나는 무대에서 얼릉 내려왔어.

그리고 나는 산토스에게 가서 이렇게 말했어.

앞으로 리치 거처는 연습실로 정하자. 우리 두 고양이가 더 이상 서로 떨어지는 일 없게.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구?

 

내 방에는 고양이용 침구가 하나 더 놓였지.

나 동거냐.